525까지의 스포 있을지도 모름
날조 100
가벼운 로코
가벼운 로코이려고 했는데 바빠서 미루는 동안 처음의 구상을 잃어버리고 먹던맛입니다
노동요 Joep Beving - Ab Ovo
Joep Beving - Ab Ovo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강창호와 김기려가 사귄지 꽤 되었다.
서로 좋아서 사귄건 아니고 사소한 오해의 중첩이 만든 관계라고 할까? 수많은 폭력과 오해, 체념으로 이어진 관계의 사이에서 강창호의 쪽에서 헤어지지 않겠냐는 권유만 수십번 있었고 한 번은 정말 헤어졌다고 강창호는 생각했지만 김기려의 안에서는 쭉 연인관계를 유지한지 꽤 되었으니, 둘이 사귄지 꽤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김기려 x 강창호
헤어지자는 말만 99번째
: unbreakable darling
金技勵 x 姜昌好
김기려는 타인이나 친구까지만 보면 이타적이고 다소 무심한 사람이었는데 연인의 입장으로 보면 성가시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강창호의 입장에서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챙겨야 할 것이 많고 호기심도 왕성한데다가 주목받는 일을 주저없이 저지르는걸 보면 이게 데이트인지 비글 산책인지 모르겠다.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하고 실제로도 그런듯 했으나, 그 생각없는 일에 휘말리는 내향인의 입장에서는 한 번 만날때마다 열흘은 집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사실 김기려가 없었어도 그만큼은 안나가곤 했지만-.
하지만 또, 보고 있으면 애잔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매정해질 수 없어 휘말린다는 점이 제일 석연치 않았다. 사실 김기려가 요구하는 것이 대단한것도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으며 그 어리광에 어울리기를 원하는 것이 창호와 강창호의 마음 모두이기도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듯 끌려가기도 했다. 강창호는 진짜로 싫은 것에는 끌려가지 않는 성미였고 김기려는 그것까진 몰랐기에 오히려 강창호는 김기려에게 더욱 관대해지는 반복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그 이상한 관계는 그만두는거지?”
강창호는 또 헤어지자는 말을 입에 담았고 김기려는 언제나와같은 무표정으로 강창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창호는 이제 저 무표정 뒤에 담긴 희로애락을 알았으며 멍청한 낯이라고 생각했다. 선글라스를 고쳐쓰며 어느새 줄줄 새어나오는 다량의 빛과 불쾌한 점유감을 흘려보내다보면 먹던 아이스크림이 녹기전에 다시 요술로 얼리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마치 손발을 움직이듯 자연스러운 마력의 흐름에 새삼 짜증이 나서 입꼬리가 올라가니 뺨과 근육의 유착점이 당기는게 느껴지는것도 같았다.
“혹시 내가 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산책하자고 해서 헤어지자고 하는거야? 여기 주변에 사람도 없는데? 이번엔 삼일만에 만나는건데?”
그동안 기려도 많은걸 배워서 강창호가 이목이 집중되는 환경이나 과하게 자주 접촉하는걸 싫어한다는걸 안다. 하지만 그래서 제법 참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저런 말을 듣는것에 퍽 놀랐다. 아니, 아무리 강창호가 변덕스럽다고 해도 그가 말하는걸 대부분 지켰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게 너무하다는 불만이 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강창호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애초에 우리가 사귄다는게 이상하다니까? 너도 말했잖아. 처음엔 관계성의 유용함때문에 오해인걸 알면서도 이 관계를 유지한거라고. 그러면 이제는 서로 알거 다 아는데 굳이 그런 이름을 우리 사이에 붙일 이유가 있을까?”
서로. 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서는 잠깐 기묘한 시선이 움직이며 목소리를 길게 끌었고 기려도 그게 서로의 본질을 말함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게 헤어질 이유가 된다는 흐름이 이상했다. 어째서? 왜? 이해할 수 없고 혼란스러워서 더욱 마력의 누수는 심해졌고 바짝 다가온 기려의 탓에 강창호는 인공적인 메론향을 가까이에서 맡을 수 있었다. 닿은 손으로 전해진 마력이 뇌로 직접적인 말을 전했다. 그리운 소리가 강창호의 마음을 누그러트렸다. 요술의 효과가 머물지 못해 끈적하게 녹아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손으로 받아내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기려는 가까운 곳에서 강창호를 빤히 보면서 여러가지 말을 했다. 그중 대부분은 강창호에게 메리트가 없는 말이었다. 일부는 귀여웠고 일부는 멍청했으며 모두 설득력을 잃은 말이었지만 강창호는 그걸 내내 반박하지 않고 들었다. 어차피 요술로 만들어낸 목소리라는건 누가 내도 비슷할텐데, 어째서인지 기려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유독 더 좋았고 그의 신경을 누그러트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의지까지 모두 뭉개버릴 것은 아니어서 손바닥을 채우고 바닥까지 떨어질것같은 크림에 붙잡은 손을 떨어트렸다. 그제야 이제 한입이 될까말까 남은 아이스크림을 깨달은 김기려는 조용해졌다가 투덜거리며 강창호의 손을 깨끗히 닦아내주었다.
“김기려.”
부루퉁한 낯을 감추려는건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기려는 다시 한 번 나지막한 부름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무표정에 가까운 낯이었지만 강창호는 알 수 있는 것이 많았고 이제 깨끗해진 손으로 기려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기려에게는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것이 좋았다. 낮게 울리는 울림통의 소리, 수분기가 느껴지는 손, 여름의 햇볕에 평소보다 한층 더운 체온같은 것들이 좋았다.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말단부나 지구의 대기가 전해주는 풍부한 향 그리고 불투명하다 느꼈지만 사실은 빛이 투과되기도 하는 피부의 반투명함, 그걸 볼 수 있는 눈까지. 지금의 육체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안정감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주는 강창호에대한 집중도같은것들이 어우러지는 지금이 좋았기에 번거롭게 여기면서도 미식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기려는 이 관계를 멈추고싶지 않았다. 못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중독자들이 하고는 하는 변명처럼 중얼거리게 되었다. ‘기려’가 준 지식에도 이러한 충동은 없었기에 기려는, 김기려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한 어느 외계인은 지금 느끼는 것을 무어라 말할지 몰랐다. 차라리 위험한 상황에 내던져지면 알았을까. 하지만 지금 그들의 주위의 공기는 평화롭고 아늑했으며 조금 더웠고, 습하고….
“우리말야,”
또 헤어지자는 말이 나올 것이다. 가슴께의 압력이 올라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근육이 긴장되는 기분나쁜 울렁거림에 기려는 충동적으로 입맞췄고 강창호는 3초간 가만히 있다가 그 뒤엔 고개를 들었다. 쪽- 소리와 함께 맞붙었던 얇디얇은 피부가 떨어지자 갈증이 일어 기려는 매달렸고 무의식중에 또 이름을 불렀다. ■ ■■■ ■■■. 인간의 목소리로는 부를 수 없어서 혹은 보안상의 이유로 맞닿은 표면에서만 일어나는 울림에 강창호는 미간을 좁혔다가 가늘은 허리에 손을 대고 끌어올렸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잔뜩 비벼지는 소리가 나는 것이 선정적이어서 민망했지만 5초정도는 더 입맞추고 있었으니 만족했겠다 싶을때 떨어져도 여전히 갈증이 이는 표정을 보면 강창호 역시 기묘한 기분이 울렁거렸다. 무심코 이름을 부를 뻔 했지만 그만둔다.
그건 강창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강창호는 이미 김기려에게 양보하는 것이 많았다. 대부분은 자의적인 것이었으나 때로는 그 자의라는 마음조차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강창호는 김기려에게 무르다고 말하곤 했지만 강창호는 김기려에게 물렀다. 많은 것을 용서하고 양보하고, 어지간한 것에는 자비를 베풀었다. 강창호는 그것이 약간의 호의와 선의에대한 존중이자 미학이라고 정의내렸다. 그토록 의심많은 강창호에게 인정받고야만 한결같은 선의를 더욱 보기 위해서, 그리고 어느정도는 이 사태를 헤쳐나갈수 있을지도 모르는 단 하나뿐인 존재를 위해서 무르게 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어야지.
강창호는 그 스스로의 형태를 바꾸어서까지, 더 이상 그의 곤궁한 자아가 나 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게 될 정도로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살아있는것? 중요하지. 하지만 그 살아남은 것이 더이상 나라고 정의지을 수 없게된다면 그것은 살아남은 것일까? 물론 사람이라는 것은 영원히 같을 수는 없었다. 경험이 사람을 바꾸고 감동이 인격을 변형시키며 결심과 각오가 마음을 바꾸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꺼림칙하게 느끼는 것은 그가 이미 충분히 그답지 않은 까닭이다.
레밍의, 아니지. 김기려의 도움으로 강창호는 어느정도 이전과 같은 마음을 되찾았다. 안온한 수역대처럼 조용하게 흔들리고 주변의 위험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고 당황하지 않는 마음을 정신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그가 판단한 미래는 긍정적이지 않았으며 항하사의 확률로 만난 희망은 모래한알씩 놓아 이어지고 이루어진 그림처럼 위태로웠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미래가 펼쳐질것으로 예측된 탓이다.
배드엔딩이나 새드엔딩을 스포일러 당한 뒤에 계속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란 어떤지 아는가? 지나쳐가고 포커싱되는 모든 것들을 가만히 보게된다. 우스운 순간마저도 침체된 기분으로 바라보고 빛나는 것은 눈을 찌르는듯이 아파서….
“…아이스크림 다시 사줄까?”
강창호는 바뀌고 싶지 않았다.
더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창호’의 기억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예시와 문학, 이야기, 자료에서 비롯한 예측때문도 아니었다.
우리의 끝은 아마 좋은 것이 되지 못할테니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아쉬움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강창호의 순식간은 레밍이 느끼던 것보다는 긴 것이었고 그 짧으면서 긴 시간동안에 강창호는 생각했다.
그의 도박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그가 살아남을지, ‘그’가 살아남을지.
알고싶지 않았고 지구에서 알게된 사후세계에대한 일설이 그의 영혼이 어디론가 이동하게 되는 거라면 이번엔 정말로 길지도 모르는 이동속에서 무엇을 생각할지 스스로 정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맺음을 지어야 하는데.
…어째 쉽지가 않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는게 느껴져서 적당한 거리로 떨어지면 김기려도 평소와같은 대외적인 거리감을 만든다.
그리고 그만큼의 체온의 거리가 벌써부터 아쉽다.
아마 그들이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때문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